15화. 얼어붙은 기록
2026. 7. 16. · 👁 5
해치가 열리자, 냉기와 함께 오래된 금속 냄새가 훅 끼쳐왔다. 헬멧 조명을 켠 세 사람은 좁은 통로를 따라 구조물 내부로 들어섰다. 벽면 곳곳에 성에가 얇게 얼어붙어 있었고, 발밑에서는 낡은 바닥판이 삐걱거렸다. "산소 농도, 극히 낮음." 한도영이 손목 스캐너를 확인하며 말했다. "헬멧은 절대 벗지 마세요." 통로 끝, 작은 방 하나가 나타났다. 접이식 침상 하나, 손으로 조작하는 구식 콘솔, 그리고 벽면을 가득 채운 손글씨 메모들. 종이가 아니라, 금속 패널 위에 날카로운 도구로 직접 긁어 새긴 기록이었다. 지은은 그 앞에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그녀의 헬멧 안에서, 흐느끼는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버지 글씨예요." 그녀가 겨우 말을 이었다. "전부 다요." 콘솔에는 놀랍게도 아직 미약한 전력이 남아 있었다. 한도영이 조심스럽게 외부 배터리를 연결하자, 화면이 지지직거리며 켜졌다. 저장된 로그 파일 목록이 길게 이어졌다. 날짜순으로 수십, 수백 개였다. 지은은 떨리는 손으로 가장 오래된 파일을 열었다. "사고 후 17일째. 비상 포드의 산소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이 관측기지를 발견했다. 버려진 실험 시설인 것 같다. 태양광 패널 일부가 살아있어서, 최소한의 생명 유지 장치는 가동할 수 있었다." 다음 파일로 넘어갈수록, 정지훈의 기록은 점점 담담해졌다. 생존을 위한 사투와, 동시에 딸을 향한 그리움이 교차하는 문장들이었다. "지은아, 네가 이걸 볼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적어둔다. 오늘은 네 열다섯 번째 생일이었을 거야. 미역국은 못 챙겨줘서 미안하다." 지은은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어, 무릎을 꿇었다. 철수가 그 옆에 조용히 앉아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로그는 계속됐다. 정지훈은 이 버려진 시설에서 태양광 에너지를 아껴가며, 규칙적으로 신호를 자동 송신하도록 장치를 개조했다. 언젠가 누군가 발견해주길 바라며. 그리고 기록은, 사고로부터 약 2년째 되는 시점에서 갑자기 끊겨 있었다. 마지막 로그 — 사고 후 731일째 "산소 재생 장치가 한계에 다다랐다. 더 버티기 어려울 것 같다. 만약 이 신호를 누군가 찾는다면—" 문장은 그렇게 끝나 있었다. 완결되지 못한 채로. 지은의 눈물이 헬멧 안쪽 바이저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럼... 아버지는 여기서—" "단정하긴 이릅니다." 한도영이 재빨리 말을 끊었다. 그의 시선은 콘솔 옆, 작게 표시된 또 다른 로그 항목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거 보세요. 마지막 기록 이후에도, 이 시설의 전력 소모 패턴이 완전히 멈추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최소한의 시스템을 계속 가동시킨 흔적이 있어요." 지은이 벌떡 고개를 들었다. "그 말은—" "정지훈 대원이, 이 시설을 떠났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한도영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다른 어딘가로요." "어디로요?" 철수가 물었다. "여긴 소행성대 한가운데인데, 갈 곳이 있었을까요?" 한도영은 콘솔을 조작해 시설 주변의 항법 기록을 불러왔다. 화면에 희미한 궤적 하나가 표시됐다. "이 시설에는 소형 예비 추진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전력 소모 기록을 보면, 사고 후 750일째 즈음 짧은 추력 분사가 있었어요. 아마도 정지훈 대원이 직접 개조해서, 근처의 다른 잔해나 시설로 이동을 시도한 것 같습니다." 지은은 눈물을 훔치며 그 궤적을 응시했다. "그럼 아버지가... 아직 어딘가에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한도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9년 전 일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여기서 생을 마감한 게 아니라는 증거는 있습니다." 지은은 콘솔 화면 속 희미한 궤적을 손끝으로 어루만졌다.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 얼굴로, 그녀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철수는 그런 그녀를 조용히 지켜보며, 이 여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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