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지워진 항로
2026. 7. 16. · 👁 6
우주국 본부, 심우주탐사본부장실. 최윤아 실장은 새벽 두 시가 넘도록 회의실을 떠나지 않았다. 마주 앉은 것은 본부장과 법무팀장, 그리고 보안 담당관 두 명뿐이었다. "한도영 기장이 무단으로 탐사정을 발진시켰습니다." 최윤아가 담담하게 브리핑을 이어갔다. "동승자는 민간 우주여행객 김철수, 그리고—" 그녀가 잠시 말을 멈췄다. "박지은. 2029년 '아레스-3' 임무 실종자 정지훈의 딸입니다." 회의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본부장이 미간을 좁혔다. "그 사건은... 이미 종결된 지 오래 아닙니까." "공식적으로는요." 최윤아가 짧게 답했다. "하지만 최근 소행성대 인근에서 미확인 신호가 반복 포착됐다는 비공식 보고가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그 좌표를 향해 이동 중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법무팀장이 서류를 뒤적이며 물었다. "그 신호가 정지훈과 관련이 있다는 겁니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최윤아가 대답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긴장이 서려 있었다. 회의실의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녀는 그 신호의 존재를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오리온-X 프로젝트가 폐기된 뒤에도, 그녀는 홀로 그 좌표를 추적해왔다. "어떻게 대응할 계획입니까?" 본부장이 물었다. "공식적으로는 조난 가능성이 있는 무단 탐사정에 대한 수색 및 구조 절차를 개시하겠습니다." 최윤아가 말했다. "다만—" 그녀가 잠시 뜸을 들였다. "수색 범위와 우선순위는 제가 직접 조율하겠습니다. 불필요한 혼선을 막기 위해서요." 본부장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회의가 끝난 뒤, 홀로 남은 최윤아는 자신의 단말기로 별도의 암호화된 회선을 열었다. 화면 너머, 오리온-X 프로젝트 시절부터 함께해온 옛 동료의 얼굴이 떠올랐다.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녀가 낮게 말했다. "우리가 덮어둔 게, 이제 밝혀질지도 몰라요." "수색대를 보내는 겁니까?" 동료가 물었다. "보내야죠. 안 그러면 더 의심받을 테니까." 최윤아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하지만 그들이 뭘 찾기 전에, 우리 쪽 인원이 먼저 도착해야 해요." 길잡이호 안, 철수는 캡슐에서 깨어난 지 이틀째였다. 예고된 대로 방향감각이 온전치 않았고, 팔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지은이 옆에서 물을 건네며 그를 부축했다. "천천히 움직이세요. 근육이 다시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려요." "생각보다 훨씬 힘드네요." 철수가 씁쓸하게 웃었다. "동면이 이런 느낌일 줄은 몰랐어요." "이제 제 차례예요." 지은이 캡슐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 옅은 불안이 스쳤다. 철수는 그것이 동면 자체에 대한 불안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괜찮아요." 철수가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제가 깨어있을게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약속해요." 지은은 잠시 그 손을 마주 잡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옅게 웃었다. "믿을게요." 한도영은 조종석에서 항법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었다. 소행성대 신호원의 좌표가 점점 더 정밀하게 좁혀지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계기판 한쪽에 뜬 경고창을 발견했다. 외부 통신 채널 — 우주국 본부 발신 시도 감지 기장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통신을 받는 대신, 채널을 차단했다. "기장님?" 철수가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본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한도영이 낮게 말했다. "받으면, 저희는 즉시 귀환 명령을 받을 겁니다. 명령에 불복하면, 그건 정식으로 항명이 되고요. 제 비행 자격이 정지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실 거예요?" 기장은 잠시 창밖의 광활한 어둠을 바라보았다. 별들 사이로, 아직은 보이지 않는 목적지가 어딘가에 있었다. "당분간은,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그가 조용히 대답했다. "우리가 무엇을 찾으러 가는지, 저는 끝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게 제가 11년 만에 내린 유일하게 후회 없는 결정이니까요." 경고창이 깜빡이며 몇 차례 더 통신 시도를 알렸지만, 길잡이호는 응답 없이 계속해서 어둠 속을 나아갔다. 그 침묵이, 지구와 그들 사이의 거리를 그 어떤 숫자보다 더 멀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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