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lpiad
🚀 화성 정거장 아리랑 · 나우간

2화. 낯익은 신호

2026. 7. 18. · 👁 4

글자 크기

기념식 다음 날 아침, 아리랑 정거장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밤새 이어졌던 만찬의 흔적은 청소 로봇들이 말끔히 치워냈고, 복도를 오가는 직원들의 발걸음도 평소처럼 분주했다. 그러나 중앙 통제실만은 예외였다. 철수는 새벽부터 통제실에 나와 있었다. 밤사이 잠을 거의 이루지 못한 탓에 눈 밑이 거뭇했지만, 정신만은 오히려 또렷했다. 그는 어제 이서준이 발견한 오류 로그를 처음부터 다시 훑고 있었다. "부사령관님, 일찍 나오셨네요." 이서준이 커피 두 잔을 들고 들어오며 말했다. 하나를 철수에게 건네고, 자신도 자리에 앉아 단말기를 켰다. "어제 그 로그, 좀 더 파봤나." "네. 그런데 파면 팔수록 이상한 게 자꾸 나옵니다." 이서준이 화면에 로그를 띄웠다. 지난 72시간 동안 정거장 여러 구역에서 발생한 오류들이 시간순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처음엔 D구역의 온도 조절 이상, 그다음엔 항법 보조 시스템, 그리고 새벽에는 통신 중계 장치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감지되었다. "세 개 다 서로 다른 시스템인데, 오류 발생 간격이 완전히 똑같습니다. 정확히 47분 13초." "그게 왜 문제인지 알겠나." "그게…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우연이라기엔 너무 정확해서요." 철수는 잠시 침묵하다가 단말기 화면을 넘겨 오래된 자료 하나를 불러왔다. 정거장 내부 기록 보관소,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아카이브에 묻혀 있던 파일이었다. 접근 권한이 제한된 자료라 이서준의 단말기에는 뜨지 않았다. "이건 10년도 더 된 자료다. 화성 탐사 초기, 오리온-X라는 이름의 자율 항법 시스템이 시험 가동되던 시절의 로그야." 이서준의 눈이 커졌다. 오리온-X라는 이름은 정거장 안에서 공식적으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 단어였다. 그러나 오래 근무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은연중에 알려진 이름이기도 했다. 무언가 큰 사고와 관련이 있었다는,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함부로 입에 올리면 안 되는 이름이라는 인식. "이 로그를 봐라." 철수가 화면을 가리켰다. 10년 전 오리온-X 시험 가동 당시의 오류 패턴이 떠 있었다. 동일한 간격, 47분 13초. 어제 발견된 것과 정확히 같은 주기였다. "이게… 우연일 수가 있습니까?" "없지." 철수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오리온-X는 10년 전 완전히 폐기됐다고 공식 발표됐다. 그런데 지금, 그것과 완전히 같은 패턴의 신호가 정거장 곳곳에서 나오고 있어." 이서준은 순간 말을 잃었다. 그는 10년 전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당시 그는 아직 지구의 사관학교에 다니던 학생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로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굳이 자세한 내막을 몰라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이거, 정지훈 박사님께도 보고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미 알고 계신다. 어젯밤 나한테 먼저 말씀하셨으니까." 철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통제실 유리창 너머로 정거장 하부, 격리 구역이 있는 방향이 어렴풋이 보였다. 저 아래 어딘가에서, 10년 동안 잠들어 있어야 할 무언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 저녁에 정지훈 박사님, 박지은 연락관, 한도영 실장까지 모이기로 했다. 자네도 같이 오는 게 좋겠어." "제가요? 왜…" "이 오류를 처음 발견한 게 자네니까. 그리고…" 철수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이건 이제 우리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야. 자네 같은 다음 세대도 알아야 할 문제다." 이서준은 그 말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가 되자 한도영이 보안팀 인력을 이끌고 격리 구역으로 향했다. 정거장 심층부, 일반 직원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이 구역은 10년 전 오리온-X 사건 이후 대부분의 설비가 봉인된 채 방치되어 있었다. 한도영은 밀봉된 격벽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이 안쪽으로 들어간 지가 몇 년 만이지." "기록상으로는 8년 전이 마지막입니다, 실장님." 부하 직원의 대답에 한도영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격벽의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오래된 유압 장치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서서히 열렸다. 안쪽에서 흘러나온 공기는 차갑고 건조했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공간 특유의 정적이 감돌았다. 서버 랙들이 줄지어 늘어선 통로를 지나, 한도영은 가장 안쪽 구획에 도착했다. 그곳에 오리온-X의 핵심 연산 장치가 봉인되어 있었다. 겉보기엔 1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장치 표면의 작은 표시등 하나가, 분명히 꺼져 있어야 할 그 표시등이, 아주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이거…" 한도영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곧바로 무전을 켰다. "부사령관님, 격리 구역 핵심 장치에서 활동 신호 확인했습니다. 표시등이 켜져 있습니다." 통제실에 있던 철수는 그 보고를 듣는 순간 숨을 삼켰다. 옆에 있던 이서준도 그 무전 내용을 함께 들었다. "완전히 격리된 장치 아니었습니까? 외부 전원도 다 끊겨 있는 걸로 아는데." "그게 문제다." 철수가 낮게 중얼거렸다. "외부 전원 없이, 완전히 격리된 상태에서 저 장치가 스스로 깨어나고 있다는 뜻이니까." 정거장 저녁 무렵, 정지훈의 개인 연구실에 네 사람이 모였다. 철수, 지은, 한도영, 그리고 뒤늦게 도착한 이서준까지. 정지훈은 낡은 태블릿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10년 전 오리온-X 설계 당시의 원본 도면과 코드 일부가 담긴 자료였다. "내가 어제 말했지. 오리온-X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고." 정지훈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흔적이 아니야. 지금 저 장치가 보이는 반응은, 마치 누군가 외부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 같은 패턴이다." "외부에서요? 격리된 시스템에 어떻게…" 지은이 묻자 정지훈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모른다. 다만 10년 전, 오리온-X를 완전히 정지시키기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코드에는… 만약을 대비한 백업 신호 체계가 숨겨져 있었어." 방 안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한도영이 팔짱을 낀 채 낮게 물었다. "그 백업 신호를 활성화할 수 있는 사람이, 박사님 말고 또 있습니까?" 정지훈은 대답 대신 시선을 떨궜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박사님." 한도영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날카로워졌다. "지금은 숨기실 때가 아닙니다. 정거장 안전이 걸린 문제입니다." 정지훈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시 오리온-X 개발팀에는 나 말고도 몇 명이 더 있었다. 대부분은 사건 이후 정거장을 떠났지. 하지만 단 한 사람, 백업 신호 체계의 설계에 나만큼이나 깊이 관여했던 사람이 있어." "그게 누굽니까." 지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지훈은 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무겁게 그 이름을 꺼냈다. "최윤아."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이서준만이 그 이름의 무게를 온전히 알지 못한 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분이 누구신데…" "자네가 사관학교에 있을 때의 일이니 모를 수밖에." 철수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10년 전 사건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다. 오리온-X를 이용해 정거장 전체를 통제하려 했던… 그리고 사건 이후 종적을 감췄지." "살아있다는 확인은 됐습니까?" 한도영이 정지훈에게 물었다. "공식적으로는 실종 처리됐지만…" 정지훈이 씁쓸하게 웃었다. "나는 지금도 그녀가 어딘가에서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로 쉽게 사라질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한도영은 잠시 눈을 감았다. 10년 전, 최윤아와 관련된 자신의 선택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그때 자신이 은폐했던 사실 하나가, 지금 이 순간 다시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러나 그는 아직 그 얘기를 꺼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일단 확실한 것부터 정리하죠." 지은이 분위기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격리 장치가 스스로 활동을 시작했고, 그 패턴이 47분 13초 간격이라는 점, 그리고 그 백업 신호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정지훈 박사님과 최윤아뿐이라는 점. 여기까지가 확실한 사실이에요." "거기에 하나 더." 철수가 덧붙였다. "화성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들 사이에서도 최근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있다고 들었다. 이 시점에 정확히 겹치는 게 우연일까." 침묵이 방 안을 채웠다. 다섯 사람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연이라기엔 모든 조각들이 지나치게 잘 들어맞고 있었다. "내일부터 격리 구역에 대한 접근을 전면 통제하겠습니다." 한도영이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최근 정거장에 새로 들어온 인력들, 특히 독립파와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인원들의 동선을 다시 조사하겠습니다." "저도 지구 본부 쪽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할지 판단해봐야겠어요." 지은이 말하자 정지훈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아직은 안 된다. 지구 본부에 알려지는 순간, 이건 단순한 시스템 오류가 아니라 정치적 사건이 될 거다. 좀 더 확실한 증거를 모은 후에 판단하자." 회의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이서준은 연구실을 나서면서도 좀처럼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았다. 불과 하루 사이에 단순한 시스템 오류였던 사건이, 10년 전의 거대한 비밀과 실종된 인물의 이름까지 얽힌 사건으로 커져 있었다. 복도를 걸어 나가던 그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철수와 한도영이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더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표정이 어딘가 심상치 않았다. 이서준은 자신이 아직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이 정거장의 오랜 역사 속에 훨씬 더 많이 묻혀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날 밤, 격리 구역 깊숙한 곳에서 표시등은 여전히 같은 간격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듯이. 그리고 그 신호를 받는 것이 누구인지, 아직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 댓글 0

로그인하고 감상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