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화. 도망칠 수 없는 포위망
2026. 7. 21. · 👁 3
책상과 시우의 단단한 가슴 사이에 갇힌 서진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눈앞에 바짝 다가온 그의 얼굴에서는 칠 년 전의 풋풋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차갑게 제련된 칼날 같은 서늘함과, 그 밑바닥에서 은근하게 타오르는 뜨거운 집착만이 가득했다. “……대표님, 업무 지시라면 충분히 들었습니다.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서진은 간신히 목소리를 짜내어 공적인 선을 그었다. 하지만 시우는 물러설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서진의 목소리에 실린 미세한 떨림을 캐치했다는 듯, 입꼬리를 비틀어 웃으며 그녀의 귓가에 얼굴을 더 가까이 붙였다. “물러나? 어디로? 내 시야 안에서 벗어날 생각은 아예 접는 게 좋을 거야, 한서진 씨.” 낮게 울리는 저음이 귓가를 간지럽히듯 때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이 요동쳤지만, 서진은 여기서 밀리면 완전히 패배한다는 직감으로 이빨을 꽉 깨물었다. 그녀는 몸을 뒤로 물리는 대신, 오히려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시우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비서실의 수석 비서로서 대표님의 공적 업무를 보좌하는 것과, 사적인 영역까지 간섭받는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공과 사는 구분해 주시죠.” “공과 사?” 시우가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그가 서진의 어깨를 짚고 있던 손을 거두며 몸을 뒤로 물렸다. 덕분에 서진은 겨우 숨통을 트일 수 있었지만, 시우의 눈빛은 여전히 위험한 불꽃을 품고 있었다. “그래, 공과 사 잘 지켜봐. 오늘 저녁에 있는 대외 협력처 회장단 만찬 일정, 네가 직접 수행해. 당연히 동행하는 거지. 십 년 차 프로 비서의 의전 능력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일 테니까.” “……알겠습니다.” 서진은 짧게 대답하고는 곧장 대표실을 빠져나왔다. 문이 닫히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저녁이 되자, 서울 시내의 한적한 고급 한정식 집으로 시우와 서진을 태운 차량이 미끄러지듯 들어섰다. 대외 협력처 회장단과의 만찬은 MH그룹의 향후 사업 확장과 직결된 중요한 자리였다. 비서실장인 서진이 직접 수행하는 것이 원칙이긴 했으나, 오늘따라 시우가 던지는 시선 하나하나가 서진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룸 안에는 회장단 노신사들과 시우, 그리고 서진이 자리했다. “이번에 MH그룹이 새로 추진하는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 건 말입니다, 강 대표 의지가 아주 확고하더군요. 젊은 나이에 이토록 안목이 넓으니 원참, 부럽단 말이야.” 협력처 회장이 술잔을 건네며 껄껄 웃었다. 시우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잔을 받았다.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다 함께 손잡고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야지요.” 술자리가 무르익어 갈수록 분위기는 부드러워졌지만, 서진의 손길은 바쁘게 움직였다. 잔이 비어갈 때마다 타이밍을 맞춰 술을 따르고, 대화의 맥락에 맞춰 필요한 자료를 태블릿으로 조용히 건네주었다. 흐트러짐 없는 완벽한 의전이었다. 하지만 시우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는 듯, 대화가 잠시 뜸해진 틈을 타 시우가 돌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우리 수석 비서 한서진 씨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룸 안의 모든 시선이 일제히 서진에게 쏠렸다. 회장들이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서진을 바라보았다. 대표가 공식 석상에서 비서의 개인적 의견을 묻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서진은 당황스러움을 순식간에 감추고, 머릿속으로 수십 번 시뮬레이션했던 데이터를 바탕으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대표님께서 구상하시는 인프라는 단순한 친환경 사업을 넘어 지역 사회와의 상생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초기 리스크는 크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룹의 신뢰도를 공고히 하는 훌륭한 전략이라고 판단합니다.” 막힘없이 흘러나오는 명쾌하고 논리적인 답변에 노신사들이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오호, 비서 양반 능력이 보통이 아니네! 강 대표, 이런 인재를 어디서 숨겨두고 있었어?” 시우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서진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감탄과 함께, 여전히 자신을 벗어날 수 없다는 오만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 “그러게요. 내 눈에만 띌 수 있게 아주 꼭꼭 숨어 있었던 사람이죠.” 의미심장한 시우의 말에 서진은 속으로 애꿎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만찬이 끝나고 식당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밤바람이 열기를 식혀주었다. 수행 기사가 차를 가지러 간 사이, 두 사람만 가로등 아래 남게 되었다. 시우가 천천히 서진에게 다가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낮게 읊조렸다. “오늘 의전,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더군. 역시 십 년 차 수석 비서답게.” “칭찬이든 조롱이든 감사히 받겠습니다, 대표님. 이만 가보겠습니다.” 서진이 자리를 피하려 하자, 시우가 한 걸음 다가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가긴 어딜 가. 아직 끝 안 났어.” 시우의 눈빛이 밤하늘의 별처럼 차갑고도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칠 년 전, 네가 내게 했던 그 차가운 말들…… 그 이유가 뭔지, 이제 내 앞에서 직접 하나씩 풀게 될 거야. 준비해, 한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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