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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서실의 그 사람 · snow

제 10화. 회오리치는 사내 소문

2026. 7. 22. ·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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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새벽을 지나 날이 밝아올 때까지 이어졌다. 거짓으로 매몰차게 뱉어낸 말들은 서진의 가슴뿐만 아니라 시우의 심장마저 가차 없이 베어버린 듯했다. 시우는 밤새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차갑고 묵직한 침묵 속에서 깊은 한숨만을 내뱉었을 뿐이다. 날이 개자 삼척의 고립도 풀렸다. 아침 일찍 도로 통제가 해제되자마자 두 사람은 서울로 향하는 차에 올랐다. 운전석의 기사는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평소보다 열 배는 더 무시무시하고 서늘한 정적에 식은땀을 흘리며 액셀을 밟았다.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시우는 단 한 마디도 서진에게 건네지 않았다. 서진 역시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쳐 가는 풍경만을 바라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하지만 진짜 폭풍우는 서울, 바로 MH그룹 본사 건물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수석 비서님! 드디어 오셨어요? 저 진짜 죽는 줄 알았다고요!” 본사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다은이 허겁지겁 뛰어왔다. 다은의 얼굴은 흙빛이 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다은 씨? 급한 결재 건이라도 들어왔어요?” “결재가 문제가 아니에요! 사내 익명 게시판이랑 찌라시 채널에 난리가 났단 말이에요!” 다은이 제 스마트폰 화면을 서진의 눈앞에 바짝 대주었다. 화면 상단에는 실시간 조회수 1위를 기록 중인 사내 익명 게시판의 글이 큼지막하게 떠 있었다. [제목: 신임 강 대표님과 회장실 수석 비서, 삼척 출장 단둘이 간 거 진짜냐?] [내용: 어제 기상 악화로 도로 통제돼서 인근 스위트룸 하나 구해서 같이 묵었다는데 완전 사실임? 비서실 완전 난리 났던데 둘이 원래 아는 사이라는 소문도 있고…… 낙하산 대표랑 실세 수석 비서의 비밀 연애냐, 아니면 권력형 뭔가냐?] 댓글은 이미 수백 개가 넘게 달려 있었다. -미친, 스위트룸 단둘이? 수석 비서 10년 차라더니 대표 마음까지 잡은 거임? -어쩐지 첫날 대표 부임했을 때 둘이 분위기 개살벌하더니 다 짠 치고 친한 척한 거 아님? -대표 젊고 존잘이라 사내 여직원들 다 노리고 있었는데 비서실 수석이 먼저 낚았네. -이거 인사팀이나 감사팀에 제보해야 되는 거 아니냐? 눈을 의심케 하는 자극적이고 악의적인 글들이 모니터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서진의 머릿속이 띵하게 울렸다. 어제 출장 현장에 동행했던 외주업체나 지역 관계자, 혹은 프런트 직원 누군가의 입을 통해 흘러나간 것이 분명했다. 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스캔들이나 사적인 소문에 휘말린 적 없던 한서진이라는 완벽한 프로의 커리어에 커다란 오점이 찍히는 순간이었다. “수석 비서님, 이거 어떻게 해요? 지금 회장실이랑 인사팀에도 문의 전화 엄청 들어오고 대표님 귀에 들어가기 직전이에요!” 다은이 발을 동동 굴렀다. 서진은 바짝 마른 입술을 적시며 손끝을 벌벌 떨었다. 이런 루머는 기업의 이미지에도 타격이지만, 낙하산 소리를 듣는 신임 대표 시우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수석 비서와의 부적절한 관계'라는 프레임은 시우의 리더십을 뒤흔들기에 가장 좋은 먹잇감이었다. ‘안 돼. 그 사람이 어떻게 여기까지 올랐는데…… 나 때문에 그런 추잡한 소문에 휘말려 무너지게 둘 순 없어.’ 서진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모든 책임을 안고 가더라도 소문을 잠재워야 했다. “다은 씨, 게시판 관리자한테 연락해서 해당 글 즉시 비공개 처리 요청해. 그리고 비서실 직원들 입단속시키고, 인사팀장님한테 내가 지금 직접 올라간다고 연락드려.” “네, 네!” 서진이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로비 한가운데로 시우가 걸어 나왔다. 전략기획실 임원들을 대동한 그의 얼굴은 마치 얼음장처럼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시우 역시 이미 휴대폰을 통해 사내 루머의 존재를 파악한 듯했다. 로비에 서 있던 직원들이 일제히 숨을 죽이고 시우와 서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오가는 시선 속에는 호기심, 질투, 비아냥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서진은 빠른 걸음으로 시우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대표님, 잠시 긴급하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집무실로 이동하시죠.”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필요하다면 자신이 비서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사직서까지 제출할 각오였다. 하지만 시우는 서진의 차갑고 사무적인 태도를 가만히 내려다보더니, 갑자기 입꼬리를 싸늘하게 비틀어 올렸다. “이동할 필요 없어, 한서진 씨.” “네?” 시우가 임원들과 로비의 수많은 직원이 지켜보는 한가운데서, 서진에게 성큼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리고는 모두가 경악으로 숨을 들이켜는 가운데, 서진의 차갑게 식은 손목을 끌어당겨 자신의 단단한 손으로 잡아챘다. “대표님! 지금 뭐 하시는……!” 서진이 놀라 손을 털어내려 했지만, 시우의 악력은 완강했다. 시우는 로비에 서서 자신과 서진을 구경거리처럼 바라보고 있던 임원들과 직원들을 향해 서늘한 눈빛을 쏘아 보냈다. “다들 할 일이 없어서 남의 사생활이나 찌라시에 갤갤거리고 있는 건가?” 시우의 낮고 매서운 목소리가 로비 전체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스위트룸이든 뭐든, 내가 내 전담 수석 비서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그건 내 권한이고 내 일이야. 헛소리 퍼뜨릴 시간 있으면 당장 각자 자리로 돌아가서 실적이나 올려. 한 번만 더 이딴 유치한 소문으로 사내 분위기 어지럽히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당장 짐 싸게 만들 테니까.” 시우의 폭탄 같은 발언에 로비는 순식간에 정적으로 휩싸였다. 그것은 소문을 해명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희가 생각하는 게 맞든 틀리든 간섭하지 마라'는식의 파격적이고 과감한 정면 돌파이자 직진 선언이었다. 서진은 경악 어린 눈으로 시우를 올려다보았다. 잡힌 손목을 타고 시우의 뜨거운 체온과 떨림이 전해져 왔다. 시우는 서진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그녀에게만 들리도록 중얼거렸다. “말했잖아, 한서진. 이젠 숨을 생각 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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