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잠자는 이의 각성
2026. 7. 15. · 👁 8
산은 늘 추웠다. 아니, 산이 추운 게 아니었다. 이 산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은 태어나서부터 늘 추웠다. 여름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 단어를 아는 사람은 이제 마을에 아무도 없었다. 열 살배기 한결이 할머니에게 "할머니, 여름이 뭐야?" 하고 물으면, 할머니는 늘 같은 대답을 했다. "바깥이 녹는 거란다." 카엘은 한결의 질문이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걸 느끼며, 도끼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내렸다. 쪼개진 나무가 옆으로 굴러갔다. 매일이 이랬다. 카엘은 열여덟이 되기 전부터 이 산에서 나무를 해왔고, 그 누구도 목수 카엘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카엘 오빠!" 뒤에서 소리가 났다. 한결이었다. 마을 광장의 아이들 중 가장 말이 많은 애. 항상 카엘의 나무를 실어 나르는 걸 도와주었다. "뭐야, 한결아." "엄마가 저녁에 감자탕 끓인대요. 오빠도 오래." 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어른들 다 모이면 시작해." 한결이 깡충깡충 달려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카엘은 문득 — 저 애는 이제 열 살이다. 자기가 다섯 살 때도 저렇게 달리던 것 같은데. 그런데 이상하게, 한결의 키는 늘 같았다. 자라지 않았다. 마을의 다른 아이들도, 어른들도. 카엘만 조금씩 자라났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가끔 "넌 왜 자라는 거냐, 카엘아" 하고 이상하게 봤다. 카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사람은 다 제각각이야" 하고 웃어 넘기면, 카엘도 그냥 웃었다. 해는 낮게 떠서, 항상 갈색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에도, 하늘은 늘 잿빛이었다. 시계탑의 시계는 20년 전 같은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 시계가 멈추기 전을 기억하지 못했으니까. 어제는 오늘과 같고, 오늘은 내일과 같다. 카엘은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후쯤, 갑자기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한겨울도 아닌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큰 눈송이가 아니라, 작은 알갱이들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오늘은 좀 이상하네." "이 산에서 눈이 온 적이 언제였나." 카엘은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갑자기 짙어져 있었다. 아니, 구름이 아니라 — 안개 같기도 하고, 안개 같기도 하지 않은 — 회색의 무언가가 산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멀리서 종소리가 났다. 금속성 종소리. 서리 왕국 변경 도시 크라켄포트의 시계탑에서만 들리는, 그 종소리. *"일어나라, 마지막 후예여."* 종소리가 끝나자,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목소리가 아니었다. 카엘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무언가였다. 마치 잊고 있던 기억의 한 조각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카엘은 눈을 감았다. 어둠이 내렸다. --- 카엘이 눈을 떴을 때, 그는 서 있는 나무 앞에 없었다. 얼음. 모든 것이 얼음이었다. 거대한 왕좌의 방. 천장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았고, 벽은 푸른빛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공간의 한가운데에, 투명한 얼음 왕좌가 서 있었다. 왕좌의 등받이에는 가문의 문양 — 북풍을 가르던 검과, 그 위에 떨어지는 눈송이 — 이 새겨져 있었다. 카엘은 알 수 없었다. 이 방에 발을 들인 적이 없는데, 모든 게 낯설지 않았다. 마치 오래 잊었던 자신의 방에 들어선 것 같았다. "가까이 와라."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카엘은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커서, 한 발짝 내디뎠다. 그리고 또 한 발짝. 얼음 바닥을 밟는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왕좌 앞에 다다랐을 때, 카엘은 그것을 보았다. 얼음 왕좌의 발치에, 얼음 속에 한 자루의 검이 박혀 있었다. 검집이 없이 맨몸으로, 푸른 마력이 흘러나오며 얼음에 반쯤 박혀 있는 검. 카엘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 차가웠다. 손끝이 얼음에 닿자마자, 그의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등줄기를 타고 추위가 올라왔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하지만 — 검의 푸른 빛이 그를 감쌌다. 추위 속의 안도. 차가움인데 따뜻한 무언가. "자격이 있느냐고 묻지 않겠다." 목소리가 말했다. "네가 후예이므로 묻는 것도 아니다. 다만 묻고 싶은 것은 — 네가 서 있을 각오가 있느냐, 라고." 카엘은 한참 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검을 잡았다. "네." 얼음이 깨졌다. --- 카엘은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해는 진작에 져 있었다. 마을에 불이 켜져 있었다. 카엘은 한참 동안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손바닥에, 푸른 얼음 자국이 — 아니,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었다. 차가운 기억. 꿈이 아니었다. 카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을 끝, 마을 사람들이 거의 가지 않는 오래된 오두막 앞에 누군가 서 있는 걸 보았다. 검은 로브. 흰 머리카락. 허리까지 닿을 정도로 긴. 등을 보인 채, 산을 향해 서 있는 노파. 카엘은 무의식적으로 걸었다. 신발도 신지 않은 채. 그리고 노파의 곁에 섰을 때, 노파가 천천히 돌아봤다. — 깊은 주름 사이로, 새벽하늘처럼 맑은 눈. "당신은 —" 카엘이 말을 꺼냈다. 노파가 먼저 말했다. "카엘. 카엘 엘카린." 카엘은 한 발짝 물러섰다. 엘카린. 그 이름은 마을의 누구도 모르는 이름이었다. 카엘의 이름은 — 마를렌 촌의 목수 아들, 카엘. 그게 다였다. "당신이 누군지 —" "모이라라고 해." 노파가 말했다. "서리 왕국 전 왕비의 시녀. 그리고 너의 — 할머니의 가장 가까운 벗이었지." 카엘은 더 물러섰다. "뭐라고 —" "네가 누구인지 알려주마." 모이라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산을 흔들 것 같은 무게가 있었다. "너는 카엘 엘카린. 20년 전에 학살된 서리 왕국 엘카린 왕가의 마지막 후예다. 네 아버지는 서리 왕국 제 14대 왕, 네 어머니는 화산 왕국의 공주. 네가 세 살 때, 네 삼촌 바엘이 가문을 몰살하고 왕좌를 빼앗았다. 네 어머니는 — 네가 죽지 않게 하기 위해, 죽어가면서까지 마법을 써서, 너를 다른 아이와 바꿔치기 했다. 그리고 그 아이는 — 네 자리에 들어가서 — 죽었다." 카엘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무릎이 꺾였다. 그는 무름을 꺾고 앉았다. 눈앞이 까맣게 변해 있었다. "왜 — 왜 나한테 —" "왜 이제야 알려주냐고?" 모이라가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너는 이제 막 성장의 마침표를 찍고 있었다. 그 마법이 풀리는 시기가 — 오늘이었어. 네가 자라기 시작한 것은, 마법이 풀리고 있다는 뜻이었고. 20년 만에 네 안에 잠든 왕족의 피가 깨어나기 시작했다는 뜻이야." 카엘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차가운 눈물이 흘렀다. "그래서 — 그래서 지금 와서 — 나보고 뭘 하라는 거야." "선택해라." 모이라가 일어서며 말했다. "이대로 마을에서 평생 나무를 해. 그게 더 쉬울 거다. 아니면 — 일어서. 조상의 검을 뽑고, 왕좌를 되찾으러 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왕국에 봄이 올 수 있게." 바람이 다시 불었다. 모이라의 검은 로브가 펄럭였다. 그녀는 카엘을 보지 않고, 산을 향해 등을 돌렸다. "내일 새벽. 마을 동쪽 큰 떡갈나무. 거기서 기다린다." 그리고 모이라는 사라졌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안개처럼. --- 카엘은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차가운 산바람이 등 뒤를 때렸다. *엘카린. 서리 왕국. 왕족의 피. 학살. 어머니의 마법.* 그의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 — 한 사람. 마르코. 마르코는 카엘의 마을 친구. 농부의 아들. 같이 자랐고, 같이 놀았고, 같이 마을의 추위를 견뎠다. 마르코만은 — 마르코만은 자라지 않았다. 카엘이 자라는 동안, 마르코는 그대로였다. 늘 같은 키, 늘 같은 얼굴. 20년이 지났는데. "그래서 너만 자라는구나, 카엘아. 나는 그렇지가 못 해." 그렇게 말하던 마르코의 얼굴이 떠올랐다. 카엘은 일어섰다. 그리고 마을로 갔다. 마르코네 집은 마을 한가운데 있었다. 불이 켜져 있었다. 카엘은 문을 두드렸다. "마르코, 나야." 문이 열렸다. 마르코가 서 있었다. 늘 보던 얼굴. 늘 보던 미소. 하지만 카엘의 눈에는, 처음으로 그 미소가 다르게 보였다. 왜 너는 자라지 않는 거야. 너는 20년 전 그날의 아이가 아니었어? 어머니가 날 숨기기 위해 바꾼, 그 아이는 너였어? 카엘은 그 말을 삼켰다. "카엘? 왜 이러고 있어? 다쳤어?" "아니." 카엘이 고개를 저었다. "마르코, 나 —" 마르코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했다. "뭔데. 그렇게 심각하게." 카엘은 숨을 들이쉬었다. "나, 내일 이 마을을 떠날 거야." 마르코의 미소가 멈추었다. 1초. 2초. 그리고 다시 — 평소처럼 웃었다. "그래? 어디로 가는데." "북쪽으로." "북쪽이라고 하면 — 서리 왕국 변경이지?" "응." 마르코가 카엘의 어깨를 잡았다. "가서 돌아와. 그게 네가 할 일이면." 카엘은 한참 동안 마르코를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올게." 마르코는 가볍게 웃었다. "저녁은 안 먹고 가? 감자탕 식기 전에." 카엘은 웃었다. 처음으로, 진짜로. "응. 먹고 가지." --- 그 밤, 카엘은 마을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감자탕을 먹고, 한결이의 웃는 얼굴을 보고, 마을 광장의 시계탑을 보았다. 멈춰 있는 시계. 20년 전 시각을 가리키는 시계. 내일 새벽, 그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할까? 새벽이 왔다. 카엘은 짐을 싸지 않았다. 가져갈 것이 없었다. 나무꾼의 도끼, 어머니가 남긴 거울 한 개, 그리고 — 마르코가 준 목도리. 그것뿐. 마을 동쪽. 큰 떡갈나무. 모이라가 서 있었다. 카엘이 다가가자, 모이라가 돌아봤다. "왔구나." "네." "준비됐어?" 카엘은 마을을 돌아봤다. 마을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결이 일어날 시간이었다. 마르코의 집에서는 — 마르코의 어머니가 새벽 기도 시간에 일어날 시간. "네." 모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발짝 앞서서 걸었다. 카엘이 따라갔다. 산의 능선을 넘자, 산골짜기 마을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카엘은 멈추지 않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올게, 마르코. 바람이 분다. 어딘가에서, 시계탑의 종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렸다. 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 1초. 2초. 움직이기 시작했다. 왕국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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