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무명객잔
2026. 7. 15. · 👁 4
강호의 소문은 모두 한곳으로 흘러든다. 무명객잔(無名客棧).
간판도 없고, 이름도 없는 낡은 주막. 그러나 강호에서 정보를 사고파는 자라면 누구나 아는 곳이었다. 살수도, 도둑도, 몰락한 명문의 후예도― 무언가를 알고 싶은 자는 반드시 이곳을 찾았다. 이곳에서는 은자만 충분하다면, 강호의 그 어떤 비밀도 살 수 있다고 했다.
무진은 삿갓을 쓴 채 객잔 문을 열고 들어섰다.
퀴퀴한 술 냄새와 함께, 수십 개의 눈길이 일제히 그에게 꽂혔다가 이내 흩어졌다. 이곳에서는 남의 정체를 캐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험한 자들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진은 구석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객잔 안을 둘러보니, 저마다 사연을 짊어진 얼굴들이었다. 눈매가 매서운 검객, 손이 유난히 하얀 독인(毒人), 술잔에 얼굴을 파묻은 낭인. 십 년 만에 돌아온 강호는, 여전히 이런 자들의 그림자로 가득했다.
곧, 허리가 굽은 늙은 점소이가 술 한 병을 들고 다가왔다.
"손님, 뭘 드시겠소?"
주름진 얼굴에 흐릿한 눈. 어디서나 볼 법한 평범한 늙은이였다. 하지만 노인이 술병을 내려놓는 그 짧은 순간, 무진의 등줄기가 미세하게 곤두섰다.
'…살기(殺氣)?'
찰나였다. 실오라기처럼 가느다랗지만, 소름 끼치도록 정제된 살기. 십 년을 죽음의 문턱에서 산 무진이 아니었다면, 결코 알아채지 못했을 기운이었다. 오랜 세월 수많은 목숨을 거두어 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이 늙은이, 평범한 점소이가 아니다.
노인 역시 무진을 힐끗 보았다. 그리고 삿갓 아래로 드러난 새하얀 무면을 발견하고는, 흐릿하던 눈이 잠깐 빛났다.
"허어. 요즘 강호를 떠들썩하게 하는 그 무면검객이, 이 누추한 곳까지 다 오시고."
"…나를 아나."
"소문이 워낙 빨라야지. 검도 안 뽑고 청검문 무사들을 눕혔다며?" 노인은 낮게 웃었다. "이 늙은이는 무명객잔의 점소이 노릇만 삼십 년째요. 강호에 떠도는 소문치고, 내 귀를 안 거치는 게 없지."
무진은 잠시 노인을 응시하다가, 품에서 은자 한 덩이를 꺼내 탁자에 올렸다.
"묻고 싶은 게 있다."
"허, 성격도 급하시지. …말해 보시오."
"십 년 전, 천마신교를 친 자들. 그중 정파 무림맹의 명을 받아 앞장선 문파들. 그 명단을 안다면."
순간, 노인의 손이 멈칫했다.
객잔 안의 소음이 아득해졌다. 노인은 한참 무진을 바라보다가, 탁자에 놓인 은자를 도로 무진 쪽으로 밀었다.
"…그 돈은 넣어 두시오."
"?"
"그 얘긴, 돈 받고 팔 물건이 아니라서."
노인은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흐릿하던 눈에, 오래 묵은 무언가가 스쳤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천마신교 멸문. 세상은 그걸 정사대전의 통쾌한 승리라 부르지. 하지만 그날 밤을 진짜로 아는 자들은 안다오. 그건 전쟁이 아니라― 도살이었어. 그것도, 안에서 문을 열어준 도살."
무진의 손끝이 저릿하게 떨렸다. 안에서 문이 열렸다. 사부의 마지막 말과, 똑같았다.
"…당신, 뭘 알고 있지."
"자세힌 모르오. 나 같은 늙은이가 뭘 알겠나." 노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다만, 그날 앞장섰던 말단 중에 벽력문(霹靂門)이라는 놈들이 있었소. 정파랍시고 훈장까지 받았지. 지금은 남쪽 하구현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고. …멸문에 가담한 자들의 명단은, 거기서부터 실을 당기면 줄줄이 딸려 나올 게요. 다만."
노인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조심하시오. 그 실을 끝까지 당기면, 강호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닿게 될 테니. 벽력문 따위는, 그저 남이 쓰다 버린 칼에 불과하오."
"가장 높은 자리라면… 무림맹주를 말하는 건가."
노인은 잠시 침묵하다,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글쎄. 나도 거기까지밖에 모르오. 다만 이것만은 확실하지. 그날 밤, 천마신교 같은 거대한 문파가 단 하룻밤 만에 무너졌소. 안에서 문이 열리고, 밖에서 정파가 밀고 들어오고, 사파는 못 본 척 눈을 감았지. 그게 어디 우연이겠소? 누군가가, 아주 오래전부터 아주 치밀하게 판을 짠 것이야. 정파도 사파도, 그저 그 판 위의 말에 불과했을 뿐이고."
무진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단순한 복수라고만 생각했다. 배신자 하나, 정파 몇 놈을 베면 끝날 일이라고. 하지만 노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강호 전체가 얽힌 거대한 음모였다.
"…그 판을 짠 자가, 누구지."
"그걸 알았다면, 이 늙은이가 삼십 년째 여기서 술이나 나르고 있겠소?" 노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자네가 그 밑바닥까지 파고든다면, 언젠가는 그 얼굴을 보게 될 게요. …부디, 그 전에 죽지만 마시오."
벽력문. 하구현. 그리고 그 위의 누군가.
무진은 그 이름들을 가슴에 새겼다. 십 년 만에, 복수의 첫 실마리가 손에 잡혔다.
"왜… 공짜로 알려주지?"
노인은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빈 술병을 챙겼다. 그러다 문득, 등을 돌린 채 나직이 말했다.
"그날 밤, 나도 잃은 게 있었거든. …내 하나뿐인 제자가, 그 도살의 밤에 사라졌지. 시신조차 찾지 못했소."
무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젊은 검객. 부디 오래 살아남으시오. 그리고 만약, 그 밑바닥까지 파헤칠 생각이라면― 이 늙은이가 아는 것쯤은, 얼마든지 더 내어드리리다."
무진은 그 말의 무게를 곱씹었다. 진짜 원흉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있다― 사부의 마지막 말과, 이 노인의 경고가 정확히 겹쳐졌다.
무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갈 곳이 정해졌다.
남쪽, 하구현. 벽력문.
복수의 첫 번째 이름이었다.
객잔을 나서는 무진의 뒤로, 노인이 다시 술병을 나르기 시작했다. 언제 그런 얘기를 나눴냐는 듯, 다시 허리 굽은 평범한 점소이의 모습이었다. 저 늙은이 역시, 어떤 무거운 사연 하나를 저 굽은 등에 짊어지고 있을 터였다.
무진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십 년 전 그날 밤에도, 저 달은 꼭 저렇게 무심히 떠 있었다. 이제 그 아래에서,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 나갈 참이었다. 그 끝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든.
무진은 삿갓을 눌러쓰고, 남쪽을 향해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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