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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두 스푼의 거리 · snow

2화. 비 오는 날

2026. 7. 14. ·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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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점심 무렵부터 하늘 한쪽이 잿빛으로 물들더니, 오후 두 시가 넘어가자 습한 바람이 카페 문틈으로 스며들었다. 서연은 창밖을 흘끗 보며 우산을 챙겨 왔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다행히 오늘 아침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챙겨 나온 참이었다. "비 온다는 얘기 있었지?" 민아가 진열대를 정리하며 물었다. "어, 오후부터 온다고 했어. 소나기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더니 이내 앞이 뿌옇게 보일 정도로 쏟아졌다. 손님들이 하나둘 우산을 접으며 들어왔고, 카페 안은 비 냄새와 젖은 옷 냄새로 가득 찼다. 빗소리가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매장 안의 공기도 어딘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손님들은 저마다 젖은 옷깃을 털며 자리를 잡았고, 서연은 늘어난 손님들을 응대하느라 손이 바빠졌다. 그 와중에도 마음 한켠에는 계속 같은 생각이 맴돌았다. 이런 날씨에도 그 사람은 올까. 오후 세 시가 가까워질수록 서연의 시선은 자꾸만 문 쪽으로 향했다. 이런 날씨에도 그 사람은 올까. 매일 같은 시간에 오는 걸 보면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 같았지만, 이 정도로 쏟아지는 비라면 이야기가 다를 수도 있었다. 혹시 오늘은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스치자 서연은 스스로도 놀랐다. 그저 단골손님 한 명이 안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왜 이렇게 마음이 쓰이는 걸까. 세 시 정각,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빗물에 흠뻑 젖은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우산을 챙기지 못했는지, 재킷 어깨와 가방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평소의 단정한 모습과는 다른, 조금은 당황한 얼굴이었다. "어, 오늘도 오셨네요." 서연은 자신도 모르게 먼저 말을 건넸다. 평소라면 그저 주문만 받았을 텐데, 이번엔 걱정스러운 마음이 먼저 앞섰다. "네, 비가 이렇게 올 줄 몰라서요." 남자가 머쓱하게 웃으며 젖은 소매를 툭툭 털었다. 그 모습이 어딘지 낯설고, 동시에 조금은 귀엽게 느껴졌다. 평소의 단정하고 여유로운 모습만 봐오다가, 이렇게 당황한 얼굴을 보니 묘하게 사람 냄새가 났다. 항상 창가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던 그가, 사실은 자신처럼 날씨 하나에 당황하기도 하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달은 기분이었다. "많이 젖으셨네요. 감기 걸리시겠어요." "괜찮아요, 이 정도는." 남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 보였지만,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빗물 한 방울이 서연의 눈에 들어왔다. 저도 모르게 손이 먼저 움직이려는 걸 서연은 애써 참았다. "주문은 늘 드시던 걸로 하시겠어요?" "네, 부탁드려요." 짧은 대화였지만, 평소보다 말이 조금 더 오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서연은 주문을 받고 카운터로 돌아서며, 방금 나눈 대화가 왜 이렇게 오래 마음에 남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2 서연은 카운터 아래에서 마른 수건을 꺼내 건넸다. "이걸로 좀 닦으세요." "아, 감사합니다." 남자는 수건을 받아 조심스럽게 어깨와 가방을 닦았다. 서연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매장 한쪽에 세워둔 여분의 우산이 떠올랐다. 손님들이 급할 때 쓰라고 놓아둔 것이었지만, 지금껏 누구에게도 먼저 권해본 적은 없었다. "저, 혹시 우산 없으시면 이거 가져가세요." 서연이 우산꽂이에서 검은 우산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괜찮아요. 그칠 때까지 기다리면 돼요." "이 비, 오늘 저녁까지 온대요. 그냥 가져가세요. 다음에 오실 때 돌려주시면 되니까." 남자는 잠시 망설이는 얼굴로 서연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유독 오래 머무는 것 같아, 서연은 괜히 우산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어차피 매장 우산이라 여러 개 있어요." 사실 매장에 남는 우산은 그것 하나뿐이었지만, 서연은 굳이 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남자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아니 어쩌면 자신이 조금 더 특별한 걸 내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남자는 그제야 우산을 받아 들며 작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이 시간에 다시 가지고 올게요." "네, 천천히 가져오셔도 돼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서연은 벌써 내일이 기다려진다는 걸 스스로도 알아차렸다. 남자는 늘 앉는 창가 자리로 향했고, 서연은 커피를 준비하며 방금 나눈 짧은 대화를 몇 번이고 곱씹었다. 평소보다 조금 긴 대화였다는 것, 그리고 그 대화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는 것. 그 사실이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커피를 내리는 손끝이 평소보다 조금 떨리는 것 같았다. 별일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봐도, 방금 전 우산을 건네던 짧은 순간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되풀이되었다. 손님에게 우산을 빌려준 게 처음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번엔 이렇게 마음이 오래 남는 걸까. 서연은 애써 그 질문을 밀어두고 커피잔에 집중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3 한 시간 남짓, 남자는 여느 때처럼 책을 읽었다. 그러나 오늘은 유독 서연의 시선이 자주 그쪽을 향했다. 젖은 머리가 서서히 말라가는 모습, 가끔 창밖의 빗줄기를 바라보는 옆얼굴.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풍경인데도, 오늘따라 유독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언니, 오늘 좀 이상하다? 먼저 말도 걸고, 우산도 빌려주고." 민아가 옆에서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냥… 비 맞고 오셨길래." "그런 거면 나도 다른 손님한테 다 그렇게 해야겠네." 서연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하며 시선을 피했다.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평소의 자신이라면 매장 우산을 그렇게 선뜻 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망설임이 없었다. "에이, 인정을 해. 언니 저 사람 신경 쓰이는 거잖아." "그런 거 아니라니까." "눈빛이 다 말해주는데 뭘. 아까 우산 건넬 때 손 떨리는 것도 다 봤거든?" 서연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끼며 얼른 다른 화제로 넘어가려 했지만, 민아는 짓궂은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그 시선을 피해 서연은 괜히 진열대의 컵을 다시 정리하는 척했다. 네 시가 넘어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산을 챙기며 서연에게 가볍게 목례했다. "우산 감사합니다. 내일 꼭 가져올게요." "네, 조심히 가세요." 남자가 우산을 펴고 빗속으로 걸어 나가는 모습을 서연은 창 너머로 바라보았다. 검은 우산 아래로 멀어지는 뒷모습이 유난히 오래도록 눈에 남았다. 마감을 준비하며 서연은 문득 손끝의 감각을 떠올렸다. 우산을 건넬 때 스쳤던 짧은 순간. 별것 아닌 접촉이었는데도, 그 잠깐의 온기가 자꾸만 되살아났다. 내일도 비가 올까. 아니, 비가 오든 안 오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내일도 그가 이 문을 열고 들어올 거라는 사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이 조금 다른 표정을 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창밖의 빗줄기는 여전히 그칠 기미가 없었다. 서연은 젖은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낯설게 옅은 미소를 짓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퇴근길, 서연은 우산도 없이 걸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 아차, 오늘 아침 챙겨 온 우산을 그에게 빌려준 게 아니라, 매장 여분 우산이었다는 걸 뒤늦게 떠올렸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피식 웃음이 났다. 정작 자신은 우산 하나 남겨두지 않고 다 내어준 셈이었다. 처마 밑에서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서연은 내일 그가 우산을 들고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면을 자꾸만 그려보았다. 그 상상만으로도 오늘 하루의 고단함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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