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화. 좁은 방 안의 텐션
2026. 7. 22. · 👁 2
천둥소리가 유리창을 잘게 부술 듯 굉음을 울리며 스위트룸 안으로 내리꽂혔다. 번개가 번쩍이는 순간, 방 안은 잠시 대낮처럼 환해졌다가 이내 짙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시우의 거칠고 뜨거운 숨결이 서진의 콧등을 간지럽혔다. 어깨를 쥠 손끝에는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의 진동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대표님, 제발…… 정신 차리십시오. 지금 우리는 출장지에서 고립된 공적인 관계입니다.” 서진은 간신히 이성의 끈을 붙잡으며 시우의 가슴팍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칠 년 동안 단련된 그의 단단한 체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우는 서진의 양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그녀를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공적? 그래, 입만 열면 공적 타령이지.” 시우가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그의 시선이 서진의 흔들리는 눈동자에서 파르르 떨리는 아랫입술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럼 묻자, 한서진. 네가 그렇게 철저하게 공과 사를 구분하는 사람이라면…… 왜 아까부터 내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목소리는 그렇게 떨고 있는 건데? 내가 아직도 네 마음 한구석을 뒤흔들고 있다는 증거 아니야?” “아닙니다…….” “거짓말.” 시우가 단호하게 말을 가로막았다. “칠 년 전 그날도 넌 그렇게 거짓말을 했어. 네가 떠나면 내가 더 잘될 거라고, 내 발목을 잡기 싫어서라고 했지? 내 인생에서 네가 빠져나간 순간부터 내 모든 성공은 의미가 없었어. 바보 같은 소리 지껄이며 나를 버려두고 도망친 건 너잖아, 한서진.” 아픈 기억의 단면이 불쑥 튀어나와 서진의 명치를 콱 찔렀다. 맞았다. 모든 것은 그날 자신이 자초한 일이었다. 집안이 폭망하고 사채업자들이 대학가까지 찾아오던 지옥 같은 나날들. 시우마저 그 시궁창에 끌어들일 수 없어서, 그의 미래를 망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가장 매몰차고 비참한 말들만 골라 내뱉으며 그를 찼었다. ‘너 같은 가난뱅이랑 미래를 그리기엔 내 인생이 아깝고 지쳐. 더 이상 연락하지 마.’ 그 말을 하고 돌아서던 날, 서진은 계단 밑에 주저앉아 피가 맺히도록 입술을 물어뜯으며 울었다. 시우가 얼마나 자신을 원망하고 저주했을지 잘 알기에, 오늘날 그가 대표로 부임해 자신을 옥죄어 올 때도 서진은 그 복수를 당연한 십자가처럼 기꺼이 받아들이려 했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그 시절의 아픔을 마주하니, 꾹꾹 눌러 담았던 방어벽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알면…… 복수해요, 차라리.” 서진의 눈시울이 붉어지며 마침내 고개를 치켜들었다.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시우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내가 당신한테 어떤 상처를 줬는지 알면서 왜 이래요? 맘껏 부려 먹고, 짓밟고, 비서실에서 괴롭혀요. 그것도 모자라면 사직서라도 내줄 테니까……!” 말을 잇지 못하고 서진의 목이 메어왔다. 서진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본 순간, 시우의 눈동자가게 진동했다. 차갑게 빛나던 서슬 퍼런 복수심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주체할 수 없는 애증과 가슴 저린 아픔이었다. 시우의 손이 서진의 어깨에서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와, 그녀의 뺨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거칠기만 할 줄 알았던 손길은 데일 듯이 뜨거웠고, 동시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정했다. “내가 너를 어떻게 짓밟아, 한서진.” 시우의 목소리가 젖어 들었다. “칠 년 동안 내가 버틸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너였어. 다시 만나서 널 무너뜨리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는데…… 막상 네 얼굴을 보니까, 그게 안 돼. 여전히 너밖에 안 보여서, 그게 나를 더 미치게 만들잖아.” 숨이 멎을 것 같은 고요 속에서, 두 사람의 거리가 아슬아슬하게 좁혀졌다. 서진의 심장이 터져버릴 듯 미친 듯이 뛰었다. 거부해야 하는데, 이 손을 밀어내야 하는데, 시우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 속에서 여전히 그를 향하고 있는 절절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시우의 시선이 서진의 눈동자에서 다시 입술로 떨어졌다. “이번에도 도망치지 마, 서진아.” 낮고 달콤한 읊조림과 함께, 시우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 물러날 곳 없는 방 안, 창밖의 폭우 소리가 세상의 모든 소음을 지워버린 그 순간, 두 사람의 입술이 마침내 아슬아슬한 선을 넘으며 겹쳐졌다. 칠 년의 세월을 돌아온 묵직한 그리움과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뜨거운 숨결과 함께 얽혀들었다. 서진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저도 모르게 시우의 셔츠 카라를 꽉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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