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죽음의 시작
2026. 7. 17. · 👁 9
``` [ DEATH COUNT 1 / 100 ] [ 다음 단계까지: 4회 ] ```
새벽 3시 12분.
편의점 카운터에 엎드려 자다가 점장에게 발로 차여 일어났다. 시급 1만 2천 원, 주 25시간, 보험 없음. 부모 보험금으로 버티는 스물넷이었다. 발은 항상 차가웠다. 편의점 바닥이 차가워서 그런 거라고, 24세의 나는 이미 합리화를 잘 알고 있었다.
F급 헌터의 24시간은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한 가지가 다른 게, 매달 협회 등록 유지비로 4만 원이 나간다는 거다. 남는 게 뭐냐고 누가 물으면 나는 웃기만 했다. 형식적인 슬픔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그게 내 인생의 거의 전부였다.
3년 전, 부모님은 게이트 사고로 돌아가셨다. B급 게이트 폭주, 부실 관리. 정부는 사과만 했다. 21살의 나는 유골 두 개를 들고 협회에 갔고, 거기서 직원이 물었다. F급 미분류로 등록된 부모님 기록이 자동으로 지워진다고. 매년 48만 원을 내면 유지된다고. 그래서 3년 동안 내고 있다. 부모님 사고 기록이 시스템에서 지워지는 게 두려웠다. 그게 슬픔의 전부인 사람이라는 게 두려웠다.
새벽 4시에 알바가 끝났다. 에어컨 바람이 등을 때렸다. 현관문을 나서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 [ 헌터청 긴급 동원 ] [ D급 게이트 출현 — 강남구 역삼동 ] [ 투입 등급: D급 이상 ] [ 지원 부족 시 E·F급 포함 ] ```
심장이 한 번 내려앉았다. D급 게이트.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는 건 곧, F급인 내가 투입된다는 뜻이다. D급 게이트에 F급이 가는 건 협회 자존심으로선 치욕이다. 하지만 사고가 났을 때 책임을 지는 건 헌터청이고, F급에게 책임을 묻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F급은 가방이다. 필요할 때 꺼내는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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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역삼동 게이트 앞.
게이트는 보라색 빛의 타원형이었다. 높이는 4층 건물 정도, 지름은 20미터. 안에 들어가면 우리는 다른 곳에 있게 된다. 모든 게이트는 그렇다. D급 게이트는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들었다. 기록상 1주일 안에 클리어된 적만 있다. *비교적.*
나와 함께 동원된 헌터는 3명이었다. 손현수, D급 지망생. 박지원, D급 지망생. 최은아, E급. 셋 다 20대 초반, 나보다 어리거나 비슷한 나이. 나만 F급이었다.
손현수가 나를 흘겼다.
"형, 왜 F급이 신고했어요. 폐 끼치시게."
"지원 부족이래. 어쩔 수 없잖아."
"지원 부족이면 안 오는 게 맞죠. F급이 D급 게이트에 가면 뭐가 달라짐? 죽는 속도?"
나는 웃었다. 사실 웃을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웃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죽음 앞에서 웃는 법은 이미 3년 전부터 배운 것인가, 아니면 24시간 편의점에서 배운 것인가.
게이트 입구 반대편에 A급 부대가 모여 있었다. 부대장 한소영이라는 이름을 나는 어디선가 들은 적 있다. 3년 전 부모님 사고 당시 구조대원. 그녀는 우리 쪽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당연하다. A급에게 F급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긴 해야 할까.
게이트가 빛났다. 손현수가 먼저 들어갔다. 박지원이 뒤따랐고, 최은아가 마지막이었다. 나는 발끝부터 들어갔다. 빛이 우리를 삼켰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그냥, *끝났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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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안은 다른 세상이었다.
하늘은 검고, 땅은 붉었다. 공기는 차갑고 축축했다. 코끝에 쇳내가 났다. 한 발을 내딛는 것만으로 몸이 무거워졌다. D급 게이트의 평균 마력 농도. 훈련은 받지만 실전은 처음이었다.
박지원이 뒤에서 작게 신음을 삼켰다. 최은아의 입이 굳어 있었다. 손현수의 등만 보며 나는 한 발짝씩 앞으로 갔다. 발밑의 흙이 질척였다. 신발 밑창이 한 번씩 푹푹 눌렸다. 한 발짝, 또 한 발짝. 이게 출근이라는 건가. 아, 알바보다 못한 출근이다.
30분쯤 걸었을까. 정면에서 무언가가 다가왔다. 처음에는 그림자 같았다. 4미터쯤 되는 직립 보행 형태. 두 개의 붉은 점. 눈. 마수의 눈이었다. 그런데 그 크기가, D급 던전의 평균 크기가 아니었다. 훈련 때 보았던 사진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레어급이다."
손현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박지원이 즉시 후퇴하려 했지만, 그것은 이미 너무 늦었다.
마수는 한 번에 3명을 죽였다. 순서가 어떻게 됐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박지원의 비명, 짧고 날카로웠다. 최은아의 탄성이 그 뒤를 이었다. 손현수가 검을 뽑다가 팔이 꺾이는 소리가 났다. 그 모든 것이 한 박자 안에 일어났다. 그리고 다음 박자, 마수의 발톱이 내 가슴 한가운데를 관통했다.
아팠다. 아프다기보다 — 차가웠다. 쇳내가 코끝에서 사라지고 대신 내 피 냄새가 났다. 따뜻한 것이 가슴에서 식어갔다. 시야가 좁아졌다. 귀가 멍해졌다. 한 발짝 앞으로 못 간 채, 무릎이 꺾였다. 가슴 안에 손가락 같은 것이 박혀 있었다. 시선이 어둡게 깔렸다. 다리 아래의 붉은 바닥이 검게 변했다.
*이게 끝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가족도 다 잃었고, 등록 유지비밖에 남은 게 없었고, 24시간 편의점에서 잠들다가 발로 차여 일어나는 스물넷의 인생이, 그렇게 끝나는 거구나. 그래, 이 정도면 충분히 슬프다. 충분히.
그런데.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기계도 아니고, 사람 목소리도 아닌. 다만 **다시**, 라고. 한 마디. 그것만 들렸다. 어둠이 다시 삼켜졌다. 식은 가슴 위로 무언가 스며드는 감각이 있었다. 한 번의 박동. 두 번의 박동.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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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다.
부엌이었다. 우리 집 부엌이었다. 아침 햇살이 식탁 위를 비추고 있었다. 시계는 오전 8시 47분. 알바 끝나고 집에 온 게 6시 반. 그 다음에 잠이 들었나. 시간은 맞았다. 커피포트에 물이 반쯤 들어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손을 가슴에 얹었다. 피는 없었다. 구멍도 없었다. 만져봐도 멀쩡했다. 그런데 손바닥에 한 가닥 땀이 맺혀 있었다. 차가운 땀. 죽었을 때의 그 차가움이 아직 피부에 남아 있었다.
"그래, 꿈이었구나."
한숨을 쉬었다. 그것이 전형적인 직업병 악몽이었다. 헌터가 아닌데 헌터 꿈을 꾸는 자의. 24시간 편의점에서 잠들어 본 사람은 다 아는 종류의 꿈.
그런데 그때, 시야 한가운데 무언가가 떠올랐다.
작은 글자. 파란색. 반투명. 한쪽 가슴 위, 정확히 마수의 발톱이 박혔던 자리.
``` [ SYSTEM AWAKENED ] [ DEATH COUNT 1 / 100 ] [ 다음 단계까지: 4회 ] ```
화면이 사라졌다. 아니,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카운트다운의 파란 불빛만 한 박자 늦게 흩어졌다.
나는 그 자리에 5분쯤 앉아 있었다. 식탁 위의 햇살이 천천히 움직였다. 커피포트 안의 물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시계의 초침이 째깍째깍 돌아갔다. 손이 떨렸다. 가슴은 따뜻했다. 그런데 그 따뜻함 안쪽에,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무언가 깨어난 것.** 무언가 **응답한** 것.
"환각."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일어섰다. 알바 시간은 30분 뒤였다. 알바비가 있어야 했으니까. 등록 유지비 4만 원이 매달 빠져나가니까. 부모님 사고 기록이 지워지면 안 되니까. 그 모든 이유가 나를 일어서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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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나서면서 핸드폰을 봤다. 알림이 하나 있었다. 5분 전, 발신자 표시 없음.
``` "윤재하 씨, 죽을 준비 되셨습니까.
— 리셋" ```
오전 8시 49분.
태양은 그대로 따뜻했다. 그러나 나는 처음으로 그 햇살이 닿는 데서 차가움을 느꼈다. 발밑의 아스팔트가 평소보다 단단해 보였다. 공기가 평소보다 묽었다. 세상은 그대로였고, 나만 달랐다. **시스템이 떠오른 이후, 나는 1번 죽었다. 다음 단계까지 4번. 그리고 100번. 그 다음은.**
진짜 끝이다.
``` [ DEATH COUNT 1 / 100 ] [ 다음 단계까지: 4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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