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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 뒤의 두 사람 · snow

제3화: 밴 안에서의 숨소리

2026. 7. 15. ·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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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고속도로 위를 육중한 검은색 밴 한 대가 미끄러지듯 달리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는 늦은 밤의 폭우가 쏟아지며 거센 파열음을 만들어냈다. 규칙적으로 유리를 때리는 빗소리와 와이퍼가 움직이는 마찰음만이 고요한 차 안을 채우는 유일한 백색소음이었다. 운전석에 앉은 지우는 전방을 주시하면서도 이따금 룸미러를 통해 뒷좌석의 동태를 살폈다. 지방에서 진행된 대형 광고 촬영은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끝이 났다.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와 감독의 무리한 요구 속에서도 강도윤은 단 한 번의 찡그림 없이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며칠째 수면을 취하지 못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지독한 프로 의식이었다. 하지만 카메라의 붉은 불빛이 꺼지자마자 도윤은 끊어질 듯한 숨을 몰아쉬며 무너져 내렸고, 지우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를 밴으로 피신시켜야만 했다. '…잠들었나.' 룸미러 너머로 보이는 뒷좌석은 어둠에 잠겨 실루엣만 겨우 보일 뿐이었지만, 도윤은 목베개에 머리를 기댄 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지우는 조심스럽게 히터의 온도를 1도 올리고, 내비게이션의 음성 안내를 가장 작은 소리로 줄였다. 강도윤의 전담을 맡은 지 불과 며칠. 지우가 가장 먼저 파악한 것은 도윤의 오만함이나 까칠함이 아니었다. 그 모든 날 선 태도의 이면에 자리 잡은 '지독한 불면증'이었다. 수면제 없이는 단 한 시간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약을 먹고 잠들어도 미세한 소리나 빛에 깨어나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늘 피로에 짓눌려 있으니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사람들은 톱스타의 오만방자한 갑질이라며 뒤에서 혀를 찼지만, 지우의 눈에 비친 도윤은 그저 벼랑 끝에 서서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기에 지금, 흔들리는 차 안에서 도윤이 수면제도 없이 까무룩 잠이 든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지우는 방지턱이 나타날 때마다 브레이크를 아주 미세하게 밟으며 최대한 충격이 가지 않도록 부드럽게 운전대를 조작했다. 도윤이 1분이라도 더 깊은 잠에 빠져있기를 바라는 무의식적인 배려였다. 그렇게 서울 진입을 30km 남겨두었을 즈음이었다. "으… 하아…." 뒷좌석에서 억눌린 신음이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처음에는 빗소리에 묻혀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했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소리는 명백한 고통의 흔적을 담고 있었다. "안 돼… 치워, 하아, 비켜…." 지우가 황급히 룸미러를 확인했다. 평온하게 잠들어 있던 도윤의 고개가 이리저리 꺾이며 뒤척이고 있었다. 어두운 실내등 아래로 언뜻 비친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긴 손가락이 시트를 찢을 듯이 꽉 움켜쥐었고, 가파르게 오르내리는 흉부는 당장이라도 산소가 부족한 사람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악몽이었다. 그것도 보통의 악몽이 아니라, 깊은 무의식의 심연에서 그를 짓누르고 숨통을 조이는 지독한 종류의 것. "선배님." 지우가 운전대를 쥔 채 조심스럽게 불렀지만, 도윤은 깨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고통스러운 신음은 헐떡임으로 변해갔고, 도윤의 상체가 발작하듯 흠칫거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두면 위험하다. 빠르게 상황을 판단한 지우는 우측 깜빡이를 켜고 갓길에 차를 세웠다. 비상등을 점멸시켜 둔 뒤, 재빨리 안전벨트를 풀고 뒷좌석으로 몸을 넘겼다. "선배님, 강도윤 선배님. 일어나십시오." 지우의 단호한 목소리에도 도윤은 악몽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누군가에게 목이라도 졸리는 듯, 도윤의 두 손이 자신의 목덜미를 신경질적으로 할퀴기 시작했다. 하얗고 연약한 살갗에 붉은 손톱자국이 길게 새겨지는 것을 본 지우는 더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강도윤 씨!" 지우가 도윤의 어깨를 단단히 쥐고 흔들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을 뻗어 자해하듯 목을 긁어대는 도윤의 손목을 강하게 잡아챘다. 그 순간이었다. 번쩍, 하고 지나가는 맞은편 트럭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밴 안을 훑고 지나감과 동시에, 도윤의 두 눈이 벼락처럼 치켜떠졌다. "허억-!" 폐부에 억지로 공기를 밀어 넣는 듯한 거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초점을 잃은 도윤의 눈동자가 혼란스럽게 흔들렸다. 그는 짐승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대상을 향해 반사적으로 힘을 주었다. 탁! 순식간에 입장이 역전되었다. 도윤의 반대편 손이 맹수처럼 날아와 지우의 멱살을 쥐어틀듯 거세게 움켜쥐었다. "누구야…! 건드리지 마, 씨발, 손대지 말라고…!" 살기가 등등한 목소리였다. 여전히 악몽과 현실의 경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도윤은 눈앞의 지우를 적으로 간주한 듯했다. 지우의 멱살을 틀어쥔 도윤의 손아귀에 얼마나 강한 힘이 실렸는지, 지우의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그러나 지우는 당황하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옷깃을 쥐고 벌벌 떨고 있는 도윤의 손등 위로, 자신의 넓고 거친 손을 조심스럽게 포개어 덮었다. "저격할 사람 없습니다. 카메라 안 돌아가고요. 차 안입니다. 저와 선배님뿐입니다." 낮고 묵직한, 다분히 이성적인 목소리였다. 지우는 요동치는 도윤의 눈동자를 정확히 마주 보며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악몽을 꾸시길래 깨웠습니다. 한지우입니다." "하아… 하아…." 지우의 일정한 음성과 포개진 손에서 전해지는 낯설고도 미지근한 체온. 도윤의 초점 없던 눈동자에 서서히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거칠게 요동치던 심장 박동이 조금씩 잦아들고, 멱살을 쥐고 있던 손아귀의 힘이 스르르 풀렸다. 도윤은 멍한 얼굴로 눈앞에 있는 지우의 얼굴과, 갓길에 세워져 비상등을 깜빡이고 있는 밴 내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현실이었다. 수천 개의 조명도, 자신을 물어뜯으려는 하이에나 같은 시선들도 없는 완벽한 밀실. 오직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와, 코끝을 스치는 지우의 옅은 섬유유연제 향기만이 이곳이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 상황을 파악한 도윤의 고개가 푹 꺾였다. 식은땀에 젖은 앞머리가 눈가를 가렸다. 지독한 수치심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남들 앞에서는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가장 바닥의 모습을, 고작 입사 6개월 차 신입 매니저에게 들켜버렸다. 당장 화를 내며 차에서 내리라고 소리쳐야 맞을 텐데. 도윤은 이상하게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우의 옷깃을 놓은 자신의 손을, 이번에는 지우의 손목으로 옮겨 무의식적으로 꽉 쥐어버렸다. 마치 절벽 끝에서 유일한 동아줄을 잡은 사람처럼. 어둠 속에서 지우의 맥박이 도윤의 손바닥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졌다. 콩, 콩, 콩. 일정하고 규칙적인 생명의 박동. 그 단단한 리듬이 도윤의 불안정한 호흡을 기적처럼 다독이고 있었다. 도윤은 자신도 모르게 지우의 손목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놓치고 싶지 않다는 본능이었다. 지우는 자신의 손목을 생명줄처럼 쥐고 있는 도윤을 내려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떨쳐내지도, 괜찮냐고 호들갑을 떨지도 않았다. 그저 도윤의 호흡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좁고 어두운 뒷좌석에 불편한 자세로 선 채 기꺼이 그의 온전한 지지대가 되어주었다. 비상등의 붉은 불빛만이 일정한 간격으로 두 사람의 얼굴을 비추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침묵 속에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도윤이 먼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은 도윤의 붉어진 눈가와, 언제나처럼 무심하고 고요한 지우의 까만 눈동자가 허공에서 강렬하게 얽혔다. "…출발 안 해?" 도윤이 잠겨서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못내 아쉬운 듯 머뭇거리며 지우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지우는 도윤의 손이 떨어져 나간 손목을 한 번 쓸어내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하겠습니다." 지우가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가고, 차는 다시 빗속을 뚫고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밴 안의 공기는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뒷좌석에 기댄 도윤은 더 이상 잠들지 못했다. 대신 그는 룸미러를 통해 운전대를 쥔 지우의 눈을 집요하게 좇았다. 지우 역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룸미러라는 좁은 거울을 통해, 두 사람의 시선은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한순간도 끊어지지 않고 팽팽하게 맞닿아 있었다.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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